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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이즈미] 안부
2018.01.30 -
[레오이즈] RepeaTragedy
2017.12.03 -
[레오이즈?] 블랙홀
2017.08.30 -
[오다자] 바다
2017.05.08 -
[쌍흑? 츄다자?] 조각글 두 개
2017.02.09 -
[오소쵸로] 체향
2016.06.28 -
[오소쵸로] 꿈
2016.06.25 1 -
[냐군쵸로/이치쥬시/오소쵸로] 조각글
2016.06.11 -
[오소쵸로] 최선
2016.05.29 -
[호노우미] 반말 [럽라60분전력]
2015.08.26
[레오+이즈미] 안부
츠키나가 군도 온대.
관심 없었을 동창회 따위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아마도 이 한 줄이었을 테다.
졸업 후 다시 모델 업계로 복귀한 세나 이즈미는 생각보다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아이돌 일과 병행하느라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이 업계에서 자신이 안정적으로 있을 위치를 다잡기 위해 소화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스케줄을 빡빡하게 채워 넣은 탓이다. 건강관리도 프로가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지. 그는 입버릇처럼 그리 말하며 빡빡한 스케줄 속에 꼭 일정의 휴식을 취했다. 쉴 때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옆에 끼고 신곡을 체크했다. 아티스트가 아닌 작곡가의 신곡. 물론 그 츠키나가 레오의 곡이다.
졸업 후, 이즈미가 그랬듯 레오 또한 작곡 업계로 완전히 돌아섰다. 그는 국내외를 전전하며 작곡에 전념했고 어떻게 그리 빨리 작업할 수 있는 건지 하루하루 새 곡을 발표했다. 처음에 이즈미는 그가 또 이전처럼 무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곧 이어폰 너머로 들려오는 곡조에 발로 차이듯 녹아내렸다. 이즈미는 웃었다. 자신이 츠키나가 레오라는 인간을 얕봤음에 의한 실소였다. 작곡이 곧 인생이라고 말했던 그가 이제야 제 맘대로 날뛸 수 있는 무대 위에 섰을 뿐이다. 그도 안정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다잡으려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여전히 레오는 이즈미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이즈미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엔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울분을 터뜨린 적도 여럿 있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그가 바로 눈앞에 있지 않아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연스레 알 수 있었다. 이즈미는 레오 또한 같으리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무대에서 있는 힘껏 빛나고 있었기에 연락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신뢰라는 건 말로 전하는 게 아니잖아. 듀엣 파트의 가사처럼 말없이 등 뒤를 맡기고 나아가고 있을 뿐이니.
동창회에서 마주한 레오는 여전히 그 특유의 발음으로 이즈미의 이름을 불렀다. 안녕, 세나! 오랜만에 만난 주제에 잘 지냈냐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이즈미는 그걸로 만족했다. 안녕, 레오 군. 작게 웃으며 건넨 인사에 레오도 만족한 듯 활짝 웃어 보였다. 굳이 그간의 안부를 물을 필요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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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이즈] RepeaTragedy
* Repeat + Tragedy
* 정작 나오는 건 리츠랑 이즈미 뿐 (리츠>이즈미 아님)
* 간접적 모브이즈 암시
* 끝나지 않음...
무슨 일이야.
문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세게 밀치고 들어온 남자를 향해 그 마른 입술이 갈라지듯 내던진 말은 그것뿐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저런 말을 했더라면 이해라도 했겠지. 자신이 무슨 이유로 왔는지, 왜 이리 격하게 행동하는지 분명히 그는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렇기에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자신이라면 구역질이 나서 내던졌을 게 뻔한 자리에 세나 이즈미가 가만히 앉아있다는 것이― 사쿠마 리츠를 더욱 화나게 하는 것이었다.
…… 물론 평소와 같은 무표정 속에 묘하게 그늘이 진 것도 포함해서 말이지. 리츠는 부러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성큼성큼 이즈미의 앞으로 걸어가 그 책상을 한 손으로 내려쳤다.
“셋쨩, 그걸 말이라고 해?”
쾅. 기세 좋다고 하기에는 무거운 느낌의 소리가 공간에 울렸다. 자신의 눈앞에서 책상이 두 동강 날 뻔했음에도, 바로 앞에 평소의 유들한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딱 봐도 굉장히 분노한 표정의 유닛 동료가 있음에도 이즈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야, 악보가 다 흩어져버렸잖아. 다만 리츠의 얼굴이 아닌 책상에 쌓여 있던 악보가 방금의 충격으로 인해 흩어진 것을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봤을 뿐. 애초부터 그와 시선을 맞출 생각을 하지 않았기도 했지만. 리츠는 악보를 정리하려는 손목을 확 휘어잡았다.
“뭔가 말이라도 해 보지 그래?”
“말이고 뭐고, 악보가 흩어졌다고. 이거 놔, 정리하게. 나중에 얼마나 귀찮아지는……”
“지금 악보가 중요한가, 셋쨩? 그딴 취급 받으면서도 여기가 그렇게 소중해?”
그제야 이즈미의 시선이 리츠를 향했다. 리츠는 그 눈을 잘 알고 있었다. 현재 부재중인 리더 츠키나가 레오가 무대에서 마이크를 내던지며 천천히 관객이라는 이름의 야유꾼들을, 뒤에 서 있던 저들을 담아내던 텅 빈 눈동자. 그것은 분명 연두색을 띠고 있었음에도 색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둘 다 눈매 나쁜 편이니까 더 똑같은 것 같네. 셋쨩은 정말 『왕님』을 좋아하지. 웃음이 나올 것 같아 리츠의 입술이 비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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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이즈?] 블랙홀 (0) | 2017.08.30 |
[레오이즈?] 블랙홀
‘…… 이번에도 실패다.’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음표의 나열이 찌그러졌다. 보는 것조차 메스꺼워질 정도라 아무렇게나 구겨 던졌다. 같은 식으로 버려진 쓰레기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구기는 수고조차 들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질려서 아무렇게나 볼펜으로 죽죽 그어 던져놓은 것, 온전한 형태로 보존하고 싶지 않아 마구 찢어 던져놓은 것 등 형태는 다양했다. 전부 쓰레기였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며칠째 몰두하고 있는데도 완성은 커녕 쓰레기만 대량 생산해낼 뿐.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곡뿐이다. 내게서 작곡을 빼면 남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도 지금 내 안의 우주엔 빛조차도 집어삼키는 무시무시한 블랙홀이 자리하고 있어서, 모든 선율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간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들려오지 않아.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은 그저 음표의 단순 나열일 뿐.
이런 걸로는 세나의 꿈을 이뤄줄 수 없다. 세나. 나의 소중한 세나. 그 녀석은 언제나 나에게 새로운 영감을 안겨주었다. 기다려, 기다려. 내가 당장 걸작을 만들어 줄 테니까. 그래, 답은 세나다. 세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와 모습을 떠올리면 영감이 떠오를 수 있을 거야. 오선지를 찾았지만 남아 있는 종이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괜찮아, 딱히 종이가 아니어도 돼. 선율만 자아낼 수 있다면 돼. 나는 벽에 걸린 액자 따위를 치워내고 텅 빈 벽 앞에 펜을 들고 섰다. 눈을 감고 세나를 떠올렸다. ……떠올리려 했다.
세나의 노랫소리가, 세나의 얼굴이.
……어땠더라?
…….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를 음표의 나열이 찌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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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이즈] RepeaTragedy (0) | 2017.12.03 |
[오다자] 바다
“오다 사쿠의 눈은 마치 바다 같아.”
“바다?”
“응, 바다. 푸른색이잖아.”
“그렇군.”
“그런데, 보통은 바다에 잔잔하다거나 조용하다는 수식어를 붙여서 표현하더군. 난 그거 아니라고 봐. 생각해 보게, 바다는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있지는 않아. 무섭게 파도가 칠 때도 있고, 메말라 버릴 때도 있고, 물이 넘쳐버릴 때도 있어. 형태를 곧잘 바꿀 수 있는 게 바로 바다라는 친구지. 수식어를 한정적으로 붙이는 건 그에게 실례가 되는 게 아닐까.”
“그런가.”
다자이는 내 눈을 들여다보듯 시선을 이쪽으로 고정하며 이야기했다. 바다에 대해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몰랐는데. 역시 다자이는 생각이 깊다. 나는 손톱만큼도 따라갈 수 없겠지. 순수하게 감탄하고 있는데 그가 아, 하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인류가 바다에게 갖고 있는 고정관념 중에 하나 정도는 공감하고 있어.”
“그게 뭔가?”
“우후후. 궁금하면 무언가 내가 말하고 싶어질 만한 동기를 부여해주게.”
나는 한참을 고민했다. 다자이에게서 말을 끌어내기 위해 나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 같은 말단 조직원이 조직 간부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긴 한 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낸 결론은 아주 형편없었다.
“게 통조림은 어떤가?”
“나쁘지 않군. 특별히 말해 줄게.”
아무래도 다자이가 정말 게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마스터에게 게 통조림을 하나 부탁했고, 다자이는 마스터가 내어 준 통조림을 까서 손으로 살을 몇 개 집어먹은 뒤 말을 이었다.
“바다에는 온갖 수수께끼가 숨겨져 있다는 거야. 연구할 필요가 있지. 그 심해 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정확하게 아는 사람도 없고 말이네. 나도 바다에는 흥미가 많거든. 직접 빠져서 온몸으로 그를 느끼며 그 비밀을 풀어내고 싶다네.”
다자이는 묘하게 들뜬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언제부터 이런 탐정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역시 대단하군. 다시 한 번 그에게 감탄했지만, 지금 그의 말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나는 어쩔까 잠시 고민하다 역시 문제점을 짚어주기로 했다.
“그렇군. 하지만 바다에 빠지면 감기에 걸리니까 관두는 게 좋아.”
“아……. 응. 그래, 그렇겠지.”
아무래도 감기에 걸린다는 사실을 잊었던 모양인지, 다자이는 아쉬운 듯한 모양새로 상 위에 상체를 푹 엎드렸다. 풀이 잔뜩 죽은 것 같았다. 하지만 감기에 걸리면 아프니까 어쩔 수 없지. 못할 말을 한 것도 아닌데 왠지 멋쩍어진 나는 뒷목을 매만졌다. 문제점을 짚어주지 않는 편이 좋았을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런 류는 자신이 없었다.
“바다에 빠지는 것보단 바닷가에 앉아서 그걸 관찰해보는 건 어떤가?”
“…… 그건 이미 하고 있어…….”
이미 하고 있었단 말인가. 역시 많지 않은 나이에 포트 마피아의 간부 자리에 오른 만큼 대단한 사내다. 나는 오늘만 세 번째로 그에게 감탄했고, 또 멋쩍어져서 혼잣말을 흘렸다.
“바닷가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함께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 응!?”
그 순간, 엎어져있던 다자이가 상체를 벌떡 일으키고 눈을 크게 뜨며 날 바라봤다.
“그런 거면 나쁘지 않네! 그래,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 해 준다면 좋을 것 같아!”
“그렇군.”
다자이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다시 신나게 떠들기 시작했다. 게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다자이는 바다와 관련된 걸 정말 좋아하는구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날이었다.
그래, 나중에 포트 마피아를 나와 소설을 쓰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다자이와 함께 앉아 그가 좋아하는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그리고 그 내용을 토대로 글을 쓰는 거다. 언제가 될 지도 확실치 않은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되었다.
(다자이가 말하는 바다 = 오다 사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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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흑? 츄다자?] 조각글 두 개 (0) | 2017.02.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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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흑? 츄다자?] 조각글 두 개
(1) 그 기대가 보답 받는 일은 없었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역대 최연소 간부의 갑작스런 임무 포기와 잠적. 조직 내부에서는 간부의 배신이라며 술렁였지만 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 다자이라고? 이번에도 분명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니까. 부러 아끼던 페트뤼스 89년산을 따 가며 녀석의 부재를 거하게 축하했다. 눈앞에서 없어져 준다면 이쪽이야 환영이지. 얼마 뒤에 그 뻔뻔한 낯짝을 다시 보게 되겠지만 말이야.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 다자이가 신분을 세탁하고 무장 탐정사에 들어갔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에도 나는 녀석이 포트 마피아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친분이 있었다던 자들과 무슨 일이 있었다고는 들었지만, 도저히 그런 트러블만으로 조직을 나갈 녀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죽었다는 친구를 따라 죽었으면 또 몰라. 뭐 그 녀석이 죽는다는 사실 자체 또한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야, 망할 다자이. 네 놈 때문에 내가 줄곧 혼자 일하고 있었다는 거 아냐? 게다가, 나 간부가 됐어. 이젠 너랑 같은 위치라고. 이젠 어디서나 네 놈을 후려 팰 수 있는 위치라니까? 혹시 이게 겁나서 못 돌아왔냐? 하여튼 못난 놈. 그래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냐? 어떤 공을 세울 작정이지? 하여튼,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잘 모르겠다니까. 누구보다도 싫은 푸른 고등어 자식. ……기대하고 있어, 파트너.
(2) 복숭아꽃
다자이 오사무가 죽었다. 자살이었다. 평소처럼 입수라며 강에 곧잘 뛰어들어댔던 그였기에 이번에도 다들 그가 뭔가 꾸미고 있는 중이라며 곧 돌아올 것이라 여겼다. 때문에 모두는 다자이가 행적을 감춘 5일 뒤 그의 시체가 썩어 짓무른 채 강가에서 발견되자 충격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자살 자살 노래를 부르더니, 잘 됐네."
싫어하는 녀석이 세상에서 사라져 주다니 정말 기쁠 따름이야. 다자이의 장례식에 나타난 나카하라 츄야는 비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는 품속에서 웬 꽃가지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개화 시기가 지난 지 얼마 안 된 복숭아꽃이었다.
"너 이 새끼, 오늘 네놈 생일이잖냐."
츄야는 끅끅거리며 제 눈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생일을 기일로 만드네! 정말 미친놈이야, 다자이! 실성이라도 한 것처럼 웃는 모습이 마치 온몸으로 오열하는 것만 같아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 수 없었다.
[오소쵸로] 체향
* [삼남을 안고 놔 주지 않는 장남X도시락을 만드는 삼남], [“손이나 잡아줘.”]를 주제로 한 2인 합작
* 이래저래 실험 해 보는 중인지라, 문체의 가독성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 함께 합작한 스퍄님의 연성은 이쪽 - (링크 추가 예정)
놀러가자는 말을 처음 꺼낸 건 오소마츠였다. 연인끼리 가기에 아주 괜찮은 장소가 있다고 했다. “놀러가자고 한다고 내가 널 용서해줄 것 같아?”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유난히 작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면서도 쵸로마츠는 단 한 번도 시선을 맞추지 않았다. 한정판이라는 냐쨩의 굿즈를 깨부순 게 원인이렷다.
“글쎄, 정말 괜찮은 곳이라니까! 너 고양이 좋아하잖아. 고양이들도 많이 와서 논다고.”
“고양이라면 나보다는 이치마츠지.”
“너도 좋아하잖아. 고양이뿐만 아니야. 경치도 끝내준다니까! 우리 둘이서만 어디 놀러간 적도 별로 없잖아, 그치?” 오소마츠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응? 뭐라고? 당장 내일 가자고? 그래! 그럼 횽아는 이만 파친코 새 기계를 만나보러 간다, 안녕!” 능청스레 연기하던 오소마츠가 살금살금 바깥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이내 도망치듯 집 밖으로 나갔다.
“오소마츠 형, 야, 장남 이 자식아!”
오소마츠의 등 뒤에서 쵸로마츠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집에 돌아오면 분명 말로 폭력을 행사하시겠군.’ 오소마츠는 쵸로마츠에게 보이지 않을 걸 알면서도 집을 향해 혀를 베에 내밀었다.
이렇게까지 대박 친 적이 있었던가? 오소마츠는 파친코에서 잔뜩 이겨서 받은 돈들이 담긴 봉투를 소중하게 끌어안았다. ‘오늘 저녁은 초밥 먹자고 할까? 아니지, 내가 딴 돈인데 왜 그 녀석들 배를 부르게 해 줘야 한담! 그럼 어디에 쓸까~ DVD? 경마? 우히히히!’ 즐거운 상상에 경쾌한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기껏 딴 돈이니 허투루 쓰기는 또 싫어서 집에 보관해두고자 딴 길로 새지 않고 곧장 집으로 춤추듯 향하니, 문득 진한 기름 냄새가 났다. ‘쵸로마츠인가?’ 자연스레 그렇게 생각했지만, 왜 쵸로마츠라고 생각했는지는 오소마츠 본인도 알 수 없었다. 그냥 감이 그랬는데 어쩌랴. ‘에이, 쵸로마츠는 아니겠지. 저녁은 튀김인가~ 튀김 좋지, 튀김!’ 고개를 가로저으며 냄새를 따라 부엌으로 향한 오소마츠는 곧 제 뺨을 한 대 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 오소마츠 형. 일찍 왔네.”
단정하게 앞치마를 두른 쵸로마츠가 그곳에 있었으니까.
“쵸로마츠?” 오소마츠는 눈을 깜빡였다. “웬 요리야? 오늘 저녁밥 네가 만들어?”
“무슨 바보 같은 소릴 하는 거야? 내일 놀러 가자며. 도시락 싸고 있는 건데. 본인이 말해 놓고 본인이 잊어버리기 있어?”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오소마츠가 잠시 굳어 있자 입을 비죽거리던 쵸로마츠가 어깨를 한 번 으쓱했고ㅡ “아, 맞다, 튀김!” ㅡ곧 다시 뒤돌아 요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뒷모습을 멍청히 지켜보던 오소마츠가 성큼성큼 쵸로마츠의 곁으로 다가갔다.
“닭튀김?”
“응, 닭튀김. 도시락의 정석이잖아?”
“다른 건?”
“튀김만 미리 한 번 해 놓는 거야. 다른 건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해야지. 쉴 수도 있고, 튀김은 두 번 튀기면 더 맛있다더라.” 쵸로마츠는 정교한 손길로 다 튀겨진 것들을 키친 타올 위에 올렸다. “기름 튀면 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붙지 마.” 그가 그리 말하며 오소마츠의 얼굴을 살피니,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빨개져 있었더랬다.
“……? 오소마츠 형? 어디 아파?”
“어, 어……, 왜?”
“얼굴이 빨개.”
오소마츠는 제 볼을 더듬다가, “이거, 그거야. 쵸로마츠가 너무 기특하고 예뻐서……, 횽아 울 것 같고, 막…….” 곧 참을 수 없다는 듯이 허둥대다 쵸로마츠의 등을 꼭 껴안았다. “…… 뭔 헛소리람.” 쵸로마츠는 고개를 다시 돌렸다. “그리고 너무 붙지 말라니까, 기름 튀면 화상 입어.” 밀어내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오소마츠는 끌어안은 손을 놓지 않았다. 몇 번 밀어내던 쵸로마츠도 결국은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 요리를 계속했다.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은 채 부비고 있던 오소마츠가 히히, 하고 개구진 웃음을 한 번 흘렸다. 쵸로마츠 특유의 체향이 맡아지는 게 기분 좋았다. “쵸로마츠, 볶음밥도 해 줄 거야?”
“…… 네가 좋아하니까 해야겠지.”
“해냈다~! 있지, 횽아 오늘 파친코에서 완전 이겼거든~ 쵸로마츠가 좋아하는 닭꼬치랑 어묵이랑 다 사 줄게!”
“굳이 안 그래도 괜찮은데.”
“또 뭐 사 줄까? 뭐 해 줄까? 응? 말만 해, 횽아가 뭐든 쏜다!”
쵸로마츠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끄고 가스 밸브를 잠갔다. “그렇게 뭔가 해 주고 싶으면 네놈이 부숴먹은 한정판 냐쨩 굿즈를 살려내.”
“…… 그, 그거 말고는?” 오소마츠의 몸이 작게 바들바들거렸지만 끌어안은 손을 풀지는 않을 모양이었다. 응, 슬슬 놔 주면 좋겠는데. 쵸로마츠는 굳이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대신 직접 제 허리를 감싼 오소마츠의 손을 자연스레 떼어내고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벗었다.
“걱정 마, 농담이니까. 어차피 한정판이라 이젠 구하지도 못하고.”
“그, 그래? 그럼 뭐 해줄까?” 다행이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오소마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 그를 한 번 흘끗 바라보고 쵸로마츠가 다시 시선을 거두었다.
“…… 손이나 잡아줘.”
그것은 아주 작은 목소리여서, 쵸로마츠의 파트너인 오소마츠가 아니었다면 듣지 못했을 것 같았다.
“…… 응? 뭐라고?” 하지만 오소마츠는 다시 말해주길 바랐다. 쵸로마츠 쪽에서 이런 말을 해 주는 건 굉장히 레어하잖아!? “……제대로 들었으면서, 짓궂게 굴지 마.” 어느새 얼굴이 빨개진 쵸로마츠가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그는 굳이 쵸로마츠의 시선이 닿는 곳으로 제 얼굴을 들이댔다. “다시 한 번, 다시 한 번만 더 말해줘.” 오소마츠의 얼굴도 쵸로마츠의 얼굴마냥 빨개져 있었고, 답지 않게 진지한 표정이었다. 쵸로마츠는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가 유난히 다른 형제들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하며 입을 우물거렸다. 얼굴이 가까이에 있으니 오소마츠 특유의 체향이 맡아져서 또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손이나 잡아달라고, 바보 장남…….”
그것 또한 아주 작은 목소리였지만, 쵸로마츠의 연인인 오소마츠의 귀에는 제대로 전해진 것이었다.
오소마츠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쵸로마츠의 양 손을 부드럽게 감싸듯 잡았다. 연인의 얼굴에 자리한 붉은색이 마치 자신의 색인 것만 같아 기분이 좋아서, 입술에 또 살짝 입을 맞췄더니 그 색이 아까보다 더 선명해지는 게 또 행복한 것이었다.
분명 부엌은 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을 터인데, 오소마츠와 쵸로마츠의 코에는 서로의 체향만이 전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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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쵸로] 최선 (0) | 2016.05.29 |
[오소쵸로] 꿈
* [오소마츠X학생 시절 쵸로마츠], ["나랑 어떻게 하고 싶어?"]를 주제로 한 즉흥 2인 합작
* 제 글은 주제와 굉장히 어긋나있습니다(중요).
* 변명 같지만 급하게 마무리하느라, 또 분량을 억지로 줄이느라 굉장히 급전개(중요2).
*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저도 모르겠습니다(중요3).
* 장남이 굉장히 초딩입니다(중요4).
* 함께 합작한 스퍄님의 연성은 이쪽 - https://twitter.com/qmfflcl1023/status/746366962125574144
“아~ 진짜 섬세함 없어! 너랑은 이제 아무 말도 안 할 거니까!”
한참의 말다툼 끝에 쵸로마츠는 일방적 통보와 함께 결국 방 밖으로 나갔고 곧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기세 좋게 들려왔다. 얼씨구, 집을 나가셨다? 하여튼 귀염성 없는 녀석이라니까! 오소마츠가 혀를 끌끌 찼다.
오소마츠와 쵸로마츠가 싸우기 시작하자 다른 형제들은 슬금슬금 밖으로 나가버린 데다 부모님은 아침 일찍부터 외출하셨기 때문에 이제 집에 남은 건 오소마츠 혼자였다. 집에 혼자 있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이제 밖에 나가자니 쵸로마츠를 쫓아 나가는 것 같아서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오소마츠는 집에 남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흥이다, 망할 시코마츠, 나쁜 동생 놈들! 오늘은 내가 집을 다 차지해버릴 거니까 각오나 하시지들! 그는 결의에 가득 찬 표정으로 온 집안을 어질러놓기 시작했다. 괜히 서랍장들을 죄다 열어서 헤쳐 놓고, 책장에 꽂힌 책들을 마구잡이로 빼서 펼쳐 놓고, 의자들을 이리저리 뒤집어 놓고, 신발장의 신발을 죄다 섞어 놓고……, 이런 짓을 하면 결벽증인 쵸로마츠가 분명 히스테릭을 부리겠지만, 그 녀석 때문에 나도 짜증 나 있다고! 오소마츠는 마지막으로 2층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누가 보면 강도라도 왔다 갔다고 생각할 정도로 잔뜩 어질러진 방 한가운데에 대자로 드러누웠다.
“…… 쵸로마츠 보고 싶다…….”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 건 좋지만(?), 이제 뭘 해야 좋을지 생각하려니 갑자기 쵸로마츠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빨리 돌아와서 이게 뭔 짓이냐고 잔소리라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사실 그 녀석 놀려먹는 게 제일 재밌기도 하고……. 그리고 일단은 애인인데……. 역시 내가 잘못한 걸까……. 문득 방 밖으로 뛰쳐나가던 쵸로마츠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엄청난 답답함이 오소마츠에게 몰려왔다. 그는 바닥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빽 하고 소리도 질러보다 입고 있던 후드를 반쯤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렸다. 아침부터 쵸로마츠와 옥신각신하느라 잠을 잘 못 잤던 탓인가 따듯한 후드로 얼굴을 감싸니 잠이 솔솔 오는 것만 같았다. …… 역시 내 잘못 아니야. 갑자기 변해버린 쵸로마츠가 나빠. 어렸을 땐 안 그랬으면서.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다 결국 눈을 감았다.
* * *
“…… 오소마츠!”
“어, 어, 응?!”
“왜 그리 멍 때리고 있냐? 게임 센터 가려는 거 아니었어?”
오소마츠가 눈을 떴을 때 눈앞에 서 있던 것은 쵸로마츠였다. 어라, 저 녀석 왜 20살 넘게 처먹고 교복을……, 아니, 얼굴도 좀 앳된 것 같은데…….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자 앞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우와!? 이 사람 갑자기 쳤어요!? 쳤다고요!? 뭐라는 거야, 기분 나쁘게 꼬나보니까 당연한 거잖아. 앳된 얼굴의 쵸로마츠가 손을 털어냈다. 이 녀석, 이렇게 말이 험했던가?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은……. 아! 오소마츠는 눈을 깜빡였다.
‘이거, 중학교 때의 꿈이구나.’
쵸로마츠가 지금의 타입으로 변하기 전, 오소마츠와 함께 악동 짓을 하고 다니던 시절. 바로 그 때였다. 자기 전에 그런 생각 좀 했다고 바로 꿈으로 나오고 그래, 완전 타이밍 좋네. 오소마츠는 낄낄 웃고 눈앞의 작은(물론, 꿈속의 오소마츠 또한 중학생 시절로 돌아가 있을 테니 두 사람의 키는 같겠지만.) 쵸로마츠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뭘 그리 쳐다보냐고, 오소마츠.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쵸로마츠의 질문은 귓속에 분명 들어왔지만, 머릿속에 들어온 건 다른 기억이었다.
- 오소마츠 형을 좋아한다고 자각하기 시작한 거, 중학교 때부터였지.
언젠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던 날, 술이 들어간 탓인가 평소보다 약간 솔직해진 쵸로마츠가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해왔더랬다. 처음에는 부정하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너랑 거리를 두기 위해 모범생을 자처했던 거야. 물론 지금이야 결국 이런 관계가 되었다지만……. 부끄러워하면서도 살그머니 잡아오던 손의 온도가 갑자기 떠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 이때의 쵸로마츠는 나를 좋아한다고……. 오소마츠는 실실 웃었다.
“쵸로마츠.”
“엉, 왜?”
“너 나 좋아하지.”
순간 다른 형제들보다 작은 동공이 크게 뜨였다. 무,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오소마츠, 내가 방금 때려서 머리 어딘가가 맛이 간 거 아니냐? 본인은 본인 나름대로 침착하려는 것 같았지만 쵸로마츠는 본래 거짓말을 못 하는 남자였고 오래전부터 파트너로서 함께 지내온 오소마츠라면 더욱 그의 거짓말을 잘 파악할 터였다.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걸 지금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냐?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귀엽기는. 오소마츠가 쵸로마츠의 입술을 매만지자 쵸로마츠가 크게 움찔했다. 오소마츠는 기분 좋게 웃었다.
“쵸로마츠, 나랑 어떻게 하고 싶어?”
“그, 그게 무슨……!!”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서는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는 어린 날의 쵸로마츠를 어떻게 요리해 먹으면 맛날까 궁리하고 있던 오소마츠의 시야가 갑자기 뒤집혔다. 뭐야, 갑자기!? 당황한 오소마츠의 귓가에 앳된 쵸로마츠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뭐라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벌써 꿈 끝이야!? 아, 타이밍 좋다고 한 거 다 철회해버릴 거야……. 역시 꿈은 꿈인 건가……. 적어도 저 양 같은 녀석한테 뽀뽀라도 해 주거나 받거나 하고 싶었다고, 젠장!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게 뻔하지만 오소마츠는 그리 호소했다. 그리고 점점 더 정신이 흐려지면서……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 * *
“오소마츠 형!”
“…… 엥? 이번엔 성인 버전 쵸로마츠네…….”
“성인 버전!? 아니, 그것보다 집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강도라도 들었어!? 들어와 보니까 집 전체가 뒤집혀 있지, 넌 방에서 옷이 반쯤 벗겨져 있지, 창문은 열려 있지……! 오소마츠 형,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응?!”
쵸로마츠가 반쯤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오소마츠의 어깨를 붕붕 흔들었다. 어깨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는 걸 보니 엄청 걱정했던 모양이다. …… 아, 이거 오해를 해도 단단히 오해했네. 그렇지만 여기서 사실을 말했다간 살해당하겠지? 오소마츠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마쳤다. 여기서는 선의의 거짓말이 필요할 것 같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다음은 간단했다. 그는 쵸로마츠를 꼭 끌어안았다.
“쵸로마츠으으……. 갑자기 강도가 들어와서, 횽아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아아~!”
“진짜 강도!? 뭐 털어간 건 없는 것 같은데, 오, 오소마츠 형 괜찮은 거야!?”
우와 믿는다, 믿어. 오소마츠는 속으로 낄낄댔다.
“우애애애앵~! 쵸로마츠, 너무 보고 싶었어어어어! 빨리 횽아한테 뽀뽀해 줘?”
“하아!? 지금 상황에 갑자기 무슨 뽀뽀야!?”
“안 해줄 거야……?”
“에, 아, 어, 음, 그, 그건……. 으아아, 진짜! 해 주면 될 거 아냐, 해 주면!”
“아 진짜, 그렇게 말하지 말…… 에 뭐라고?”
오소마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눈을 질끈 감은 쵸로마츠의 입술이 볼에 살짝 닿았다 떨어졌다. …… 그냥 놀려먹으려던 속셈이었는데, 진짜로 해 줄 줄이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에 오소마츠는 쵸로마츠를 멍하니 바라봤다. 이 녀석 왜 귀엽고 난리지. 뭐냐, 이 귀여운 건? 아, 내 쵸로마츠구나. 무의식중에 그 새빨개진 볼에 손을 뻗었다. 꿈에서 본 어린 쵸로마츠와 같은 색의 얼굴이네. 당황한 쵸로마츠가 눈을 깜빡였다.
“오,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 지금 집에 너 말고 또 누구 있어?”
“아니, 없는데……. 왜, 왜 그러는데?”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이 체리마츠야. 오소마츠는 대답 대신 밝게 웃어보였다. 열어 두었던 창문과 방문은 쵸로마츠가 닫은 모양이었다. 역시 타이밍 좋다는 말은 철회 안 해야겠다. 그래, 꿈이고 뭐고 실물이 최고지. 쵸로마츠가 다시 한 번 오소마츠의 이름을 불렀을 때, 오소마츠는 이 귀여운 녀석을 어떻게 요리해 먹을지에 대한 생각을 이미 전부 끝마친 상태였다. 아까 싸웠던 건 다 뭐였지? 뭐 때문에 싸웠더라. …… 에이, 다 잊어버렸어. 쵸로마츠가 이렇게 귀여운데 알 게 뭐람.
그는 곧 행동을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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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냐군쵸로/이치쥬시/오소쵸로] 조각글
트위터에서 소재랑 커플링 주면 조각글 써 주는 해시태그 했었음. 좀 옛날에…….
* 냐군쵸로 (첫 데이트)
[쵸로마츠 군, 나 이번 주 일요일에 오프예요. 그러니까 데이트해요! ( ^ ω ^ ♥]
갑작스레 도착한 이 메시지 하나로 내가 얼마나 잠을 설쳤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그리고 토요일인 오늘 얼마나 혼란에 빠져 있는지도. 거울 앞에 서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고, 벗어보고……. 뭘 입어도 영 아니란 느낌이 든단 말이지. (사실, 가지고 있는 옷도 늘 입는 체크무늬 셔츠와 형제들과 맞춘 후드 따위들, 면접용 양복들뿐이니 아주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 정식적인 첫 데이트인데다가 냐 군은 아이돌이니까, 최대한 부족하지 않게 하고 나가고 싶은데. 이게 바로 망할 동정의 한계인가, 결국 체리마츠고 딸딸마츠이며 쵸로따르스키인 내게는 무리인 것인가, 그런 것들로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기에 나는 결국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기로 했다.
“톳티, 아니, 토도마츠! 얼른 내 옷 어떤지 봐 줘! 그리고 어떻게든 해 줘!”
형제들이 모두 모여 있는 2층 방의 문을 세게 열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엥, 쵸로마츠 형? 왜 그러는데. 어디 중요한 데라도 가? 내게 호명된 토도마츠는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그래! 목숨이 걸려 있어! 빨리 평가해 줘! 나는 토도마츠의 앞으로 달려가듯 빠르게 다가가 섰고, 토도마츠는 잠시 나를 훑어보다 곧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런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 뭐야 그 패션!? 순간적으로 바보 털 없는 카라마츠 형인 줄 알았거든!? 평소에도 존나 촌스럽지만 오늘은 안쓰럽네! 미친 거 아냐!?”
“진짜냐!? 아니, 그보다 너 지금 나 은근 디스했, 아니다. 카라마츠 같았다니 심각하네!? 어떻게든 해 주라, 제발!”
어디선가 당황하는 카라마츠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 같았지만, 지금은 딱히 상관없었다. 내가 토도마츠를 붙잡고 늘어지자 녀석은 결국 깊게 한숨을 쉬고 날 방에서 끌고 나갔다. 결과적으로 다른 형제들이 그 일을 가지고 몇 번이나 놀려댈 것이며 토도마츠에겐 또 몇 번이나 욕을 얻어먹을지, 약간 암울한 미래가 눈앞에 선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데이트니까. 나는 토도마츠에게 끌려가며 내가 좋아하는 그 청록색 눈동자와 아이돌답게 곱지만 또 남자답게 크고 잔근육이 있는 따듯한 손, 내 이름을 부르며 좋아한다고 해 줄 때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떠올렸다. 내일이면 만날 수 있어, 냐 군. 무려 데이트라고, 데이트!
“…… 저기, 실실 웃지 말고 본인의 일이니까 집중하지 그래, 라이징따르스키 형!?”
“죄송합니다.”
차려입은 나를 보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할까, 토도마츠에게 말로 얻어맞아가면서도 그 생각에 기분이 좋아 발걸음이 빨라졌다.
* 이치쥬시 (벚꽃)
“이치마츠 형! 벚꽃 잔뜩 폈다아~”
“아직 만개까지는 안 했는데.”
“으응~ 그러게! 약간 아쉽지만, 곧 만개하겠지!”
“아아, 그래…….”
나한테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눈을 감았다.
이치마츠가 지붕 위에 올라와 있으면 어느 새인가 쥬시마츠가 따라 올라와 옆에서 떠들었다. 이치마츠가 형제들 중에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제일 긴 게 바로 쥬시마츠였고, 쥬시마츠에게도 그러했으니까.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성실했던 이치마츠가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면서 더 가깝게 지내게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귀찮단 말이지…….’
그렇게 안 보이지만 쥬시마츠는 분명 형제들을 끔찍이 아끼는 녀석이었고, 그래서 겉돌기 시작한 이치마츠를 억지로 잡아끌어 돌아오곤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언제나 이상한 언동으로 관심이나 끌고 앉았고. 물론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다 우리의 관심을 끌어서 우리가 함께 있길 바라는 것에서 나오는 행동이잖아. 나는 알고 있다고. 이치마츠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벚꽃! 벚꽃! 벚꽃!”
“저기, 쥬시마츠.”
“응? 왜애, 형아?”
네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어차피 나는 모두에게서 떨어지지 않을 거니까. 그런 말을 속으로 넘긴 이치마츠가 이번에는 밖으로 한숨을 쉬었다.
“벚꽃, …… 만개하면, 또 다 같이 놀러 가면 좋겠네.”
“엥!? …… 우와하, 이치마츠 형이 그런 말을 먼저 할 줄은 몰랐어!”
“문제 있냐.”
“아니! 없슴다! 머슬 머슬! 허슬 허슬! 꽃놀이! 꽃놀이! 야구!”
쥬시마츠가 아까보다 묘하게 더 밝아진 표정을 짓는 것에 이치마츠는 만족감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따듯한 봄날의 햇살이 기분 좋은 날이었다.
“쥬, 쥬시마츠. 잠깐만, 그렇게 뛰면 무너지, 에에에엑!?!?”
“어라! 어라라! 무너진다, 무너져! 우와아아!”
이치마츠의 말에 아까보다 더 신나버린 쥬시마츠가 지붕 위에서 방방 뛰기 시작해서, 결과적으로 지붕이 무너지고 그 바로 아래에 있던 카라마츠가 깔렸으며 쵸로마츠에게 잔소리를 듣게 된 건 덤.
* 오소쵸로 (목도리)
우리 여섯 쌍둥이는 각자 ‘이건 나의 색.’ 이라고 정해놓는 색깔이 있었다. 우선 장남인 나, 오소마츠는 빨간색. 카라마츠는 파란색이고 쵸로마츠는 초록색, 이치마츠는 보라색에 쥬시마츠는 노랑이었으며 토도마츠는 분홍색이다. 난데없이 왜 색깔 이야기를 하냐면…… 글쎄, 그 색의 규칙을 깨먹는 일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어려서부터 결벽증 기질이 있던 쵸로마츠는 유난히 그 색에 집착하는 녀석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할까, 남하고 같이 쓰기를 싫어한다고하 할까 뭐 그런 맥락이다. 후드 티 안에도 셔츠 단추를 끝까지 잠그고 입는다거나, 바지가 더러워지는 게 싫다고 끝부분을 접어 올려 입는다거나. 굉장히 답답하게 사는 녀석……. 하지만 그런 쵸로마츠였기에 다른 형제의 색을 걸치고 있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음, 본의 아니게 서두가 꽤 길어져버렸네. ……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 쵸로마츠가 하고 있는 목도리의 색이 나의 색인 빨간색이라는 것이다. 아니! 나는! 빠칭코에 늦게까지 있던 날 데리러 와 준 쵸로마츠가 너무 추워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추우면 내 목도리라도 할래? 라고 반쯤 농담 친 게 진짜 먹힐 줄 몰랐지! 헉, 혹시 내가 모르는 새에 땅하고 하늘이 뒤바뀌어 버린 거 아님? 그럼 횽아 진짜 무서울 것 같아! 그리고 사실 그렇게 추운 날씨도 아닌데! 저 녀석 왜 저러지!? 왜 저럴까!?
“저기…… 오소마츠 형.”
“어!? 응! 아, 응! 왜, 쵸로마츠!?”
“엥, 뭘 그렇게 놀라.”
너 그거 진심으로 묻는 거냐!? 난 목구멍까지 솟아올랐던 딴죽을 겨우 참아내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답했다. 평소에 딴죽 담당인 녀석이 이럴 때 담당 바꾸지 말라고! 결벽증 기질 있는 녀석이~ 라고 하면 왠지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 같으니까 아니라고 답한 거지만 말이야. 캬, 이 횽아 완전 장남력 터지지 않음? 속으로 신나게 자뻑질을 해대고 있는데 날 이상한 사람 보는 시선으로(횽아 좀 상처받았다…….) 보던 쵸로마츠가 마치 내 속을 다 읽은 것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오소마츠 형 목도리를 선뜻 한 게 그렇게 이상해?”
“헤엑!? 아니, 그,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당연히 말은 안 했고, 그런 생각을 했겠지~ 라는 거야.”
“에스퍼!? 에스퍼야!? 너도 에스퍼 냥코가 맞았던 그 주사 맞은 거야!?”
“…… 좀 숨기는 기색이라도 보여라, 바보마츠.”
한심한 녀석을 본다는 시선으로(횽아 진짜 상처받는다니까…….) 한숨을 쉬던 쵸로마츠가 곧 목도리를 코까지 끌어 올리며 작게 말했다.
“오소마츠 형이 생각하는 건 대충 안다고. 그리고…… 그…… 오소마츠 형이니까 괜찮은 거야.”
아아~ 역시 나라서 괜찮은 거구나. 그래, 그래. 나 장남이니까~ 그러니까 쵸로마츠도 안심하고……
…… 저 녀석 얼굴이 왜 저렇게 빨개졌지?
……………………………………………….
“쵸로마츠, 횽아 이거…… 고백? 어…… 뽀뽀해도 되는 거?”
“닥쳐, 망할 장남!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미친 소리 하지 마! 역시 이런 거 말해주는 게 아니었어!”
“에, 왜애~ 횽아 완전 기쁜데?”
“닥쳐!”
아까보다 얼굴이 더 빨개져서는, 귀여워라. 근데…… 음……, 그렇다고 때릴 것까진 없지 않아? 진짜 너무하네……. 그래도 뭐 상관없으려나. 나는 빠른 걸음으로 앞서 가는 쵸로마츠를 따라 뛰었다. 빠칭코에 왕창 져서 기분이 영 아니었는데, 갑자기 기분이 최고가 됐어! 오늘 밤은 최고!
[오소쵸로] 최선
* 직접적인 수위는 없으나, 대사가 약간 자유로운 편입니다.
* 토도마츠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 오소마츠 군 콤비(속도마츠, 숫자마츠, 목재마츠)는 서로 파트너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 개인적인 캐해석이 들어 있습니다.
* 회지 '최선에서 최고까지'에 실릴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쵸로마츠 형은 오소마츠 형을 좋아한다.
물론 본인은 숨기려고 하는 것 같지만 남은 형제들은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들 처음에는 친 형을, 그것도 얼굴이 똑같은 제 쌍둥이를, 더 나아가서는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었지만.
딱히 동성애적인 그런 것에 고정관념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게 ‘쵸로마츠 형’이라는 게 우리에겐 제일 큰 충격 포인트였던 것이다. 누구보다도 정상인에 집착하고 이 암흑 대 마계의 썩을 정도로 어두운 지옥의 카스트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제일 강한, 툭하면 취업해라 일해라 구직 센터 다녀와라 등등 잔소리를 늘어놓고 형제 중에서는 본인이 제일 정상적이며 제대로 된 인간이라고(물론 절대 아니지만) 어필하고 다니는, 그런 쵸로마츠 형이었으니까.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 그런 쵸로마츠 형이 우리 중 제일 가는 쓰레기인 오소마츠 형에게 사랑에 빠지다니.
그래,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지만…… 우리는 쵸로마츠 형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전에 오소마츠 형과 내가 쵸로마츠 형을 자극했다가 자의식 빅뱅이라는 무서운 일이 일어났던 적이 있었고, 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을 볼 때의 애틋한 시선이라거나(물론 평소엔 잔소리만 하지만, 가끔씩 그런 눈빛을 발견할 수 있을 때가 있었다.), 언젠가는 방에 혼자 틀어박혀 오소마츠 형의 이름을 부르며 우는 쵸로마츠 형을 본 적도 있었다. …… 정말이지, 나이는 먹을 대로 먹고 혼자 방에서 운다니 이것도 정말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라니까. 울 거면 방문 좀 제대로 닫던가, 화장실에서 울던가, 하여튼 눈에 띄지 않게 하란 말이야. 그러다가 휴지마츠 사건도 벌어졌던 거잖아. 쵸로마츠 형 진짜 바보 아냐? 가끔 보면 카라마츠 형이랑은 다른 차원으로 안쓰럽단 말이야.
하여튼, 그런 쵸로마츠 형을 알게 된 우리는 끝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더럽게 찌질하긴 했지만, 그런 모습들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는 더 이상 쵸로마츠 형을 괜히 자극해서 괴롭게 할 수 없다는 게 우리들의 입장이었다. (아, 누가 보면 완전 사이좋은 형제인 줄 알겠는데, 그냥 우리가 무서워서 이러는 거니까! 자의식 빅뱅으로 수습할 수 없는 괴물이 또 만들어지는 건 진짜 사양이거든! 이상한 착각을 하고 있다면 당장 관둬주길 바란다. 진짜로.) 게다가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도 딱히 없었으며 우리가 알고 있는데 쵸로마츠 형과 오랜 파트너였던 오소마츠 형이라면 그 마음을 분명 눈치 채고 있을 테니, 뭔가 행동에 나서 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우리는 한 걸음 뒤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기로 한 것이었다.
…… 하지만 오소마츠 형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지. ‘아~ 역시 오소마츠 형이야. 기적의 바보라니까. 눈치 엄청 느리네!’같은 느낌으로 이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은 얼마 전의 일이었다.
여느 때처럼 다 같이 치비타네 가게에서 술을 잔뜩 마셨던 날이었다. 그날따라 쵸로마츠 형은 하지도 못하는 술을 혼자 부어라 마셔라 식으로 마셔댔었다. 결국 제일 먼저 취해가지고는 평소처럼 똥꼬 털을 태워버린다느니 뭐라느니 시답잖은 소리를 외쳐대는 통에 시끄러웠지. 거기서 끝났다면 좋았을 텐데, 하고 한심한 탄식을 해 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어찌할까.
그래, 그 때 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에게 고백을 해 버린 것이다.
“……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는데 왜 몰라주는 거야, 오소마츠 형.”
…….
그 때의 공기는 말로 할 수 없었다. 치비타가 잠시 물을 뜨러 갔던 게 다행이라고 할 정도? 그 쥬시마츠 형까지 얼어붙어서 오소마츠 형의 눈치를 살폈을 정도니까 말이다. 말이 없어진 카라마츠 형과 이치마츠 형(이쪽에서는 둘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과 마찬가지로 일순 굳었던 나는 금방 정신을 차렸다. 그래, 아무리 바보라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했는데 모를 리가 없겠지. 오소마츠 형의 당황한 표정이라도 감상해야겠다 싶어 재빨리 형의 얼굴을 살폈다.
그런데 그게 또 참 대단한 것이었다. 오소마츠 형은 턱을 괸 채로 제 옆자리에 앉아 엎드려서 우는 쵸로마츠 형을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전혀 당황한 것 같지도 않았고 도리어 아주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말하고 앉았냐는 표정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보통 친동생에게 고백을 들으면 저런 표정을 지어? 아니, 그럴 리가 없지. 오소마츠 형이 짓고 있는 표정은 절대 그런 상황에 지을 표정이 아니었기에 나로썬 전혀 그 속내를 알 수 없었다.
그 뒤로도 오소마츠 형은 똑같이 행동했다.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아무런 관심조차 없다는 듯. 없었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술에 아무리 취해도 필름이 끊기지 않는 쵸로마츠 형이 그 일을 꿈이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로. 그제야 우리는 최초에 했던 예상대로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의 마음을 전부터 쭉 눈치 채고 있었지만(확실하진 않지만 우리보다도 더 일찍 알아차리지 않았을까, 라는 추측도 하고 있다.) 일부러 그것을 모르는 척 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 둘은 워낙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으니까. 오소마츠 형에 대한 건 쵸로마츠 형이 제일 잘 알고 있었고, 쵸로마츠 형에 대한 건 오소마츠 형이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눈치를 못 채는 편이 역시 이상하지.
하지만, 어째서?
오소마츠 형이 맨 처음(아니, 맨 처음이 아니더라도) 쵸로마츠 형의 마음을 알아챘다면 확인한답시고 달려드는 식의 섬세함 없는 반응을 보였을 텐데. 쵸로마츠 형이 아파하는 것도 알고 있었을 텐데. 물론 우리 중에서 제일가는 쓰레기지만 그래도 장남이랍시고 형제를 끔찍이 아끼는 사람인데. 그게 내가, 우리가 아는 오소마츠 형일 터인데.
성향이 안 맞는다고 해도 술 마시고 고백했던 것에 대해선 뭔가 반응을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이상한 표정은,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었다는 식의 반응은 대체 어째서야?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거야?”
나는 함께 낚시하러 나온 카라마츠 형에게 짜증도 낼 겸 생각을 물어보기로 했다. 너무 답답해서 참을 수 없겠는데 또 정작 오소마츠 형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서 말이지. 카라마츠 형은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형님과 쵸로마츠의 관계를 말하는 건가?”
“그래. 오소마츠 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쵸로마츠 형은 멘탈 약한 부분이 있으니까 그렇게 내버려두면 어떻게 엇나갈지 모르는데. 저번에도 봤잖아? 자의식 빅뱅 괴물. 그것 때문에 우리가 아침마다 골판지 노트북이랑 스마트폰 챙겨줬어야 했었고…….”
내 투덜거림에 카라마츠 형은 음, 하고 짧게 신음하며 끼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어 닦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오소마츠에게 직접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직접!?”
카라마츠 형은 역시 오소마츠 형 상대라면 행동이 빠르네. 하고 잠시 생각했다.
“그, 그래. 그래서 오소마츠 형이 뭐랬는데?”
선글라스는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한데도 카라마츠 형은 계속해서 선글라스를 닦았다. “그게 참, 또 대단한 대답이었지.”형이 깊게 한숨을 쉬고 말을 이었다.
“…… 형님은 쵸로마츠가 상처받는 게 싫다고 했다.”
……저기, 전혀 이해 못 하겠는데. 이거 정상적인 반응이지? 나도 카라마츠 형을 따라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하아!? 그게 뭔 소리야!? 지금 이런 상황이 계속 되는 것으로도 충분히 상처받고 있을 걸!? 쵸로마츠 형, 혼자 방에서 울기까지 했다고!”
“그래, 나도 그걸 알기 때문에 무슨 의미냐고 되물었었지. 그런데 형님, 아니……, 하지만 오소마츠는…….”
카라마츠 형은 말끝을 흐리더니 열심히 닦고 있던 선글라스를 물에 냅다 던져 버렸다. 그리고 곧 그 썩을 가죽 재킷 안쪽에서 새 선글라스를 꺼내 쓰는 바람에 형의 표정을 제대로 다시 볼 수는 없었지만, 형이 누구보다도 짜증나고 답답해하고 있단 걸 알 수 있었다.
분명 오소마츠 형이 제대로 된 답을 안 해줬겠지. 게다가 장남과 삼남 사이에 낀 입장이기도 하니 카라마츠 형의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닐 거야. 이치마츠 형이 말이 없는 거야 평소와 다를 게 없지만 그 쥬시마츠 형까지 요즘엔 집 안에서 비교적 조용히 있다 보니 다 같이 모여 있으면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느낌이고, 오소마츠 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카라마츠 형이었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쵸로마츠 형에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는지라 카라마츠 형에게 주어지는 압박감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쉬고 재킷 안에 또 선글라스가 있는 건 상당히 안쓰럽다고 카라마츠 형에게 말해준 뒤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이만 집에 가자고 했지만, 형은 고개를 저었다. 어라. 카라마츠 형은 보통 내가 일어서면 함께 일어서는데. 혼자 남아서 생각에라도 잠기고 싶은 걸까.
“그럼 난 먼저 가볼게. 일찍 가서 낮잠이라도 자고 싶어. 늦지 않게 들어와야 해?”
난 멋쩍게 웃고 카라마츠 형을 두고 먼저 집으로 향했다.
…… 지금 와서 후회해 봤자겠지만, 나는 그래선 안 되었다.
* * *
집에 있으면 답답하단 걸 알면서도 왜 그렇게 곧장 집으로 향했던 걸까. 기분도 안 좋았으니 스타버라도 들러서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자바칩 프라푸치노라도 마시며 시간을 좀 때우고 들어갔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 적어도 2층에 올라가지만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이때의 어리석은 나는 카라마츠 형에게 했던 말을 곧이곧대로 이행하기 위해 2층에서 소파에서든 이부자리를 펴서든 낮잠을 자려고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그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소리라고 해 봤자 쵸로마츠 형의 목소리였지만, 그게 우는 것 같기도 하고 웃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이상한 느낌이었다. 형의 그런 목소리를 들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그래, 이건 마치-
‘이런 망할 쵸로따르스키!’
…… AV에서나 들을 법한 신음소리였다. 머릿속에 빨간불이 켜지며 분노가 치밀었다. 또 쵸로따르스키 짓이냐고, 이 휴지마츠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길래 소리까지 내고 난리야! 복도에 다 들리거든!? 나는 당장 문을 열고 소리를 질러버려서 저 휴지마츠 타임을 중단시켜버리려고 했고, 그 기세로 방문에 손을 뻗었을 때, 쵸로마츠 형의 신음에 섞여 들려온 목소리는 내 행동을 정지시키기에 충분했다.
“…… 쵸로마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요즘 우리 집안 최고의 미스터리, 오소마츠 형이었으니까.
아…….
…… 에? 어?
으으응?
으으으으으으응??
이거 설마 내가 생각 하는 그런 거야? 아니, 그런 거는 뭔데? 아니, 에? 쥬시마츠 형이 있었더라면 분명“세크로스!”하고 소리 지를 법한 그거 말하는 거야? 아니, 아니아니아니! 쥬시마츠 형은 게임 제목을 말하고 있는 것뿐이야! 딱히 섹스라던가, 뭐!? 섹스!? 세, 섹……
“…….”
…… 지금 오소마츠 형하고 쵸로마츠 형이 방 안에서 뭘 하고 있다고? 머릿속에서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불타는 듯 선명한 빨간불이 뒤통수를 퍽퍽 때려오는 것 같았다. 손이 떨려서 차마 문을 열어 확인할 생각은 할 수도 없었지만, 굳이 확인하지 않더라도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들이 머릿속 빨간불만큼 너무나도 선명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이, 지금 이 방문 너머에서 섹스하고 있다는 사실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지? 1번, 당장 이 문을 열고 들어가서 저 미친놈들을 두들겨 팬다. 아냐, 두들겨 팬다니. 오소마츠 형의 주먹이랑 쵸로마츠 형의 등짝스매싱이 얼마나 아픈데. 내가 이길 수나 있겠냐! 그럼 2번, 이 자리를 피하고 모른척한다. 찝찝하지만 그나마 이게 낫네. 그렇지? 그래, 이걸로 하자.
생각을 마친 내가 당장에 자리를 피하려고 발을 앞으로 내디뎠는데, 너무 놀라서인지 한 걸음 만에 발이 꼬여 멍청하고도 요란하게 넘어졌으며 그 소리를 듣고 당황한 표정으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 전라의 오소마츠 형과 쵸로마츠 형에게 들킨 것은 아주 당연한 수순이었다.
함께 태어나 이십 수년을 옆에서 지내왔지만, 이렇게까지 어색한 삼자대면은 처음이었다. 모든 걸 봐 버린(정확히는 들은 거지만) 나는 오소마츠 형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 자리를 뜨려고 했지만, 얼굴이 새빨개진 쵸로마츠 형의 비명 아닌 비명을 듣고(꺄아아아악이라니 공포 영화도 아니고…….) 다시 한 번 발이 꼬여 넘어졌으며 그새 내 옆으로 온 오소마츠 형에게(아무리 집이라지만, 옷을 다 벗은 채 방 밖으로 나오는 건 관둬 주지 않을래?) 어깨를 아주 세게 붙잡혀 “…… 우리 얘기 좀 할까?”라는 말을 들은 뒤 얌전히 대기하다 곧 옷을 챙겨 입고 나온 두 명의 형과 함께 술집으로 향한 것이다.
…… 이상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요약해서 보내드렸습니다. 자, 이제 누가 나 좀 살려줬으면 좋겠는데. 대화가 이어지지 않은 게 체감 상 1시간은 넘은 것 같거든! 오소마츠 형은 흡연실이라고 담배나 뻑뻑 펴 대고 있고, 쵸로마츠 형은 계속 술이나 마시고 있고, 나는 그 둘 앞에 앉아서 안주로 나온 땅콩이나 까먹으며 눈치 보고 있는 이 상황! 제발 누가 도와줘! 속으로 엉엉 울고 있는데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술 때문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아마 양쪽 다겠지) 얼굴이 새빨간 쵸로마츠 형이었다.
“…… 저기, 토도마츠.”
와, 평소엔 그렇게나 톳티, 톳티라고 불러대는 주제에 갑자기 이름으로 부르기 있어? 더 긴장되게 만드네! 나는 애써 침착했다.
“……응, 쵸로마츠 형.”
“그, 저기,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까…….”
쵸로마츠 형은 약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그런 쵸로마츠 형의 얼굴을 곁눈질로 한 번 흘끗 보더니 담배를 끄고 대신 말을 이었다. 엄청나게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딱히 우리 서로 사랑하거나 그런 거 아니니까. 그냥 그거야, 성욕 처리를 위한 관계라고나 할까. 섹스 파트너? 너도 알다시피 우린 망할 니트라 돈도 없어서 우리끼리 풀 수밖에 없다고. 그러니까 딱히 신경 쓰지 말자는 거야. OK?”
…… 하아? 저 사람 지금 뭐라고 한 겁니까?
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의 얼굴을 바라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쵸로마츠 형이 어떤 마음인지 다 알고 있는 주제에……! 저 인간은 쓰레기야. 쓰레기라 자칭하는 이치마츠 형보다 오소마츠 형이 더 쓰레기라고! 나는 테이블을 주먹으로 쳤다.
“오소마츠 형, 진짜 미쳤어? 쓰레기 소리 하도 들어서 진짜 완벽한 쓰레기가 된 거야?”
“……막내, 횽아한테 말이 좀 험하다?”
“지랄하고 있네, 어차피 동갑이잖아! 쵸로마츠 형이 어떤 마음인지 알잖아! 지금 하는 짓이 쓰레기 짓이 아니면 무슨……!”
“토도마츠!”
쵸로마츠 형이 내 말을 가로막고 엄청난 기세로 멱살을 잡아왔다.
……아차, 너무 화가 나서 그만 쵸로마츠 형 앞인데도 앞뒤 안 가리고 말해버렸어. 어떡하지, 이대로 맞으려나. 그렇지만 난 쵸로마츠 형을 위해서 화낸 건데. 맞을까봐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더니 차분하려고 노력한 것 같았지만 내 귀를 후려갈겨 오는 쵸로마츠 형의 목소리는 결국 떨리고 있는 것이었다.
“…… 네가 뭔 생각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오소마츠 형이 하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어. 나는 이 녀석과는 달리 정상인이라고.”
“……하아? 그게 무슨…….”
나는 지금 쵸로마츠 형이 뭐라고 하는 건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서 다시 눈을 떴더니 별로 무섭지도 않은 쵸로마츠 형의 험악한 표정 뒤로(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을 좋아하는 건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하나도 안 쫄았어, 진짜로!) 오소마츠 형의 표정이 보여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오소마츠 형이 무언가를 생각할 때의 버릇이지, 입을 다물고 뚱한 무표정을 짓는 거. 사실 우리 형제들이라면 다들 알 테지만, 왜 지금 이 상황에 오소마츠 형이 그런 표정을 짓는 거지? 뭘 생각하고, 어딜 보고 있는 건데? 불만스럽게 오소마츠 형을 보고 있자니 본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있단 걸 알아챈 듯 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둘이 눈으로 뭔 얘기 하냐?”
그리고 나는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뎅~?”
쵸로마츠 형이 돌아보자마자 오소마츠 형이 바로 평소의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바뀌었다는 것.
‘……쵸로마츠 형이 보니까 일부러 바꾼 거야?’
내게 표정을 들켰단 것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오소마츠 형은 평소처럼 코 밑을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태평하게 말했다.
“아아, 그래, 그래~ 톳티! 내가 억지로 쵸로마츠를 덮치고 있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이상한 생각 하지 마라?”
여태껏 나와 눈을 마주쳐주지 않던 오소마츠 형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저 녀석은, 그래. ……나랑 달리 정상인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눈을 마주쳐도 나는 오소마츠 형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지금 정상인이냐 아니냐가 문제인 게 아니잖아. 형은 대체 나에게 뭘 전하고 싶은 거지? 내가 오소마츠 형보다 바보였던 거야? 혼란스러움에 약한 현기증이 느껴져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니,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던 쵸로마츠 형이 다시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곧 멱살을 잡았던 손을 풀었다.
“토도마츠 너도 참 웃기는 녀석이야.”
쵸로마츠 형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형은 분명 내게 미소지어주었다.
“정상인은 피가 이어진 형제를 좋아하지 않잖아, 안 그래?”
…… 하지만 금방에라도 대성통곡할 것만 같은 눈을 하고 있는 주제에 입만 웃으면 뭐해.
나는 저 바보 천치 같은 쵸로마츠 형의 얼굴을 마주보기 힘들어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자리에 고쳐 앉았다. 형은 말없이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마시고 죽어버리려는 생각인 것 같아서 저 인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문득 오소마츠 형과 눈이 다시 마주쳤다.
그리고 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다시 땅콩을 깔 수밖에 없었다.
……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과 똑같은 눈을 하고 있었으니까.
* * *
술을 죽어라 마셔대던 쵸로마츠 형이 끝내 테이블 위에 엎어져 잠들었다. 평소처럼 소리 지르거나 토하는 패턴이 아니라 다행이네. 수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질 뻔했는데 말이야.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고 있는 오소마츠 형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형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내게 알 수 없는 곳이었다. 그래, 쵸로마츠 형이 잠든 건 정말 다행이야. 쵸로마츠 형의 방해 없이 오소마츠 형과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게 됐으니까.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고 이번엔 겉으로 한숨을 크게 쉬었다.
“오소마츠 형, 솔직히 말해.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슨 소릴까, 톳-티?”
사람 속을 박박 긁어대는 저 웃는 얼굴에 꽤 진심으로 주먹을 날리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몇 배로 돌려받을 게 눈앞에 선했기 때문에 애써 참기로 했다. 언젠가 쵸로마츠 형이 아빠의 지인 회사에 취직해서 자립했던 날, 끝까지 쵸로마츠 형의 배웅을 나오지 않았던 망할 오소마츠 형에게 한 방 먹여주고자 선빵을 쳤지만 내게 남은 것은 큰 멍이었던, 그 때의 충격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니까 말이다.
젠장! 정말 귀찮은 사람이라니까, 망할 장남! 나는 쥬시마츠 형이 좋아했던 여자아이와 헤어지게 되어 한참을 울었던 언젠가의 그 밤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쵸로마츠 형이 오소마츠 형을 좋아하는 거 알고 있지?”
“물론이지. 내가 이 녀석에 대한 걸 모를 리 없잖아?”
우와, 조금이라도 주저할 줄 알았는데 태연하게도 말하네. 아까는 아니라며!
“그럼 어째서 그런…… 짓을 하는 건데?”
“그야 쵸로마츠가 나를 좋아하니까.”
“…… 저기, 그렇게 말하면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거든? 알기 쉽게 좀 설명해줄래?”
나는 아까의 현기증에 이어 이젠 기어코 머리까지 아파오는 것 같아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소마츠 형은 아까 내가 했던 것처럼 한숨을 크게 쉬고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잘 생각해 봐, 토도마츠.
“쵸로마츠는 날 좋아하지만, 정상인이 되고 싶어 하잖아?”
문득 오소마츠 형의 오른손이 눈에 띄었다. 형은 주먹을 꾹 쥐었는데, 도대체 얼마나 힘을 주는 건지 곧 터질 것처럼 붉어져서 벌벌 떨리고 있었다. 내가 놀라서 오소마츠 형의 표정을 살피자,
“아, 진짜 어이없는 놈이야, 쵸로마츠.”
형은 끅끅거리며 웃고 있었다.
…… 하지만 내게는 그게 웃는 건지 우는 건지 판단이 잘 서지 않았고 오소마츠 형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까 들었지? 정상인은 피가 이어진 형제를 좋아하지 않는다잖냐. 그럼 그 자칭 정상인께서 나를 좋아하는 건 또 뭔데? ……자의식 라이징도 정도껏 하라 이거야. 그 녀석 때문에 카라마츠한테는 한 대 맞기까지 했다고? 횽아 완전 아팠다, 톳티~!”
“카라마츠 형, 때리기까지 했어!?”
카라마츠 형은“이 카라마츠의 브라더들은 모두 소중하니까!”같은 안쓰러운 대사를 입에 달고 살기는 하지만……. 사실 오소마츠 형에 대해서는 대우가 좀 다르다고나 할까, 동생들을 좀 더 아끼는 느낌이었다. 카라마츠 형은 형제들 사이에서(이치마츠 형에게는 특히 더)호구 취급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정말 화났을 때는 용서가 없었는데, 게다가 쵸로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의 동생이고 오소마츠 형은 카라마츠 형의 형이니까 대우가 조금 달랐겠지. 전에도 오소마츠 형이 쥬시마츠 형의 배를 발로 차니까 가차 없이 주먹을 날리기도 했었고. 하지만 이야기를 들은 것만으로 그렇게까지 하다니…….
‘카라마츠 형, 내 생각보다도 더 화나 있었던 걸까?’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오소마츠 형은“네 파트너 완전 무서워~ 어떻게 좀 해 봐~”같은 말로 칭얼대다 내가 까놓은 땅콩을 날름 집어 먹었다. 마지막 거였는데! 내가 노려보자 형은 킥킥대며 웃었지만, 그 표정은 딱히 진짜 웃겨서 웃는 것 같지는 않았다.
“토도마츠.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 쵸로마츠의 그 모순.”
“…… 정상인에 집착하는 주제에 친형을 좋아하는 거?”
“그래, 잘 아네. 너도 봤잖아? 자의식 빅뱅 때문에 망가졌던 쵸로마츠. 지금 이 완전 반대되는 선택지 중에서 쵸로마츠가 어느 한쪽으로 쏠리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나는 스타버에서 골판지로 만든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며 골판지로 만든 핸드폰으로 가상의 누군가와 통화하던 쵸로마츠 형의 모습을 떠올리고 나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또, 망가지려나…….”
오소마츠 형이 줄창 피고 있던 담배를 끄고 이를 내보이며 씩 웃었다.
“정답. 그래서 나는 이 녀석에게 해 줄 수 있는 걸 해 주고 있는 거라고?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잖아?”
쵸로마츠 형의 마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로 오소마츠 형을 사랑하는 마음. 그걸 알고 있는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형을 안았다.
둘째로 정상인이 되고 싶은 마음. 마찬가지로 그걸 알고 있는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형을 안으면서도 쵸로마츠 형이 본인에게 품은 마음을 모른 척 하고 성욕 처리 같은 말을 하며 본인이 나쁜 사람이 되기를 자처하고 이런 자신과 달리 쵸로마츠 형을 정상인이라고 불러주었다.
결과적으로 오소마츠 형은 본인이 말한 대로 쵸로마츠 형의 마음 양쪽 모두를 어느 정도 이뤄주고 있는 셈인 것이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하게.
“아…….”
그때 비로소 나는 카라마츠 형이 들었다는‘쵸로마츠가 상처받는 게 싫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뒤통수를 무언가로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나는 나도 모르게 내 머리를 매만졌다. ……오소마츠 형은 한 수 앞을 내다보고 있었구나. 쵸로마츠 형이 망가지는 걸 걱정해서 말이야. 꼴에, 꼴에 장남이라고. 그래봤자 하나도 안 멋있거든!
“이제 알았어?”
오소마츠 형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하다, 왠지 당한 기분이야.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면야 어쩔 수가 없네.
그렇게, 계속 품고 있던 의문과 답답함이 풀려 한시름 놓았다…… 고 생각했던 참이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오소마츠 형도 정말 대단하네.”
“응?”
“아무리 동생을 위한 행동이라고는 해도, 감정 없는 상대를 안는 거 말이야. 게다가 가족에, 동성이고……. 정말 대단한 행동력이야. 그것 하나는 인정해 줄게.”
아무 생각 없이 던진 이 말에,
“…….”
오소마츠 형은 분명 표정을 굳혔다.
“…… 응? 왜 그래, 오소마츠 형?”
그리고 곧 다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웃고는,
“아, 아니. …… 아무것도 아니야. 나 정말 카리스마 레전드 아니냐? 크으으~ 인간 국보라니까, 인간 국보! 자랑으로 여겨라, 톳티~!”
급하게 말을 늘어놓고 술잔을 들이켰다.
……저건 아무리 봐도 뭔가 아직 남아있단 것처럼 보이는데. 지금 분명 숨기려고 한 거지? 여기까지 와서 또 뭘 더 숨기려고 하는 거야, 저 망할 장남이. 도대체 뭐냐, 뭐야. 다시 의문이 고개를 들어 수상한 티를 팍팍 내는 오소마츠 형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중에 문득 내가 떠올린 것은 카라마츠 형이 했던 말이었다.
‘형님은 쵸로마츠가 상처받는 게 싫다고 했다.’
‘그런데 형님, 아니……, 하지만 오소마츠는…….’
…… 카라마츠 형은, 왜 굳이 호칭을 형님에서 오소마츠로 바꿨을까.
장남으로써의 오소마츠 형은 쵸로마츠 형이 상처받는 게 싫다.
하지만 ‘오소마츠’로써의 오소마츠 형의 감정은?
내 말을 듣고 오소마츠 형이 표정을 굳힌 이유는?
내가 계속 놓쳐왔던, 오소마츠 형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만약, 내가 생각한 답이 맞다면…….’
나는 오소마츠 형을 떠 보기로 했다.
“그런데, 오소마츠 형. 굳이 섹스라는 방법이어야 했을까? 다른 방법도 분명 있지 않았으려나.”
“…… 응? 무슨 방법?”
“가령…… 쵸로마츠 형에게 다른 사람을 붙여준다거나.”
오소마츠 형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일을 들었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본인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지.
“……그게 무슨 소리야?”
“역시 오소마츠 형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데 그런 방법을 쓰는 건 힘들 거 아니야. 우리에겐 데카판 박사가 있잖아. 적당히 사랑에 빠지는 약이라도 달라고 해서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만들었다가 약효가 풀리면 쵸로마츠 형이‘아, 오소마츠 형을 좋아한다고 느꼈던 건 한 때의 착각이었구나.’같은 생각을 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접게 만드는 방법도 있잖아. 오, 이거 좋네. 있지, 오소마츠 형이 고생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이 방법으로 쵸로마츠 형을……”
“……토도마츠!!”
오소마츠 형은 다급하게 내 말을 가로막았다.
“나는…… 지금 내가 쓰는 방법이 제일 좋다고 생각해. 이건, 이건 그러니까…… 그래, 나랑 쵸로마츠는 파트너잖아? 그 녀석에 대한 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러니까, 나는 내 판단이 제일 옳다고, 그렇게 생각하거든?”
그리고 나는 오소마츠 형의 반응에서,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둬. 나는 완전 괜찮아.”
내가 도출해낸 답이 정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양 어깨를 붙잡고 벌벌 떨며 필사적으로 설득해오는 오소마츠 형의 표정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알 수 없었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 그래, 오소마츠 형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 * *
‘…… 오소마츠 형도 쵸로마츠 형을 좋아하는 건 아니고?’
생각을 입 밖으로 냈으면 오소마츠 형은 무슨 반응을 보였을까.
쵸로마츠 형은 오소마츠 형을 좋아하지만 정상인이 되고 싶어한다. 정상인은 피가 이어진 형제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억지로 웃던 얼굴은 정말 바보 같았지. 그리고 그 모든 걸 알고 있던 오소마츠 형.
…… 애써 아닌 척했지만 분명 쵸로마츠 형과 같은 마음이겠지. 아까 쵸로마츠 형과 똑같은 표정을 지었던 건 단순히 쵸로마츠 형을 안쓰러워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라 쵸로마츠 형이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눈앞에서 말해버리니 원래는 아니란 걸 알고 있더라도 자신도 좋아하는 입장에서 역시 마음이 아파서 그랬던 거겠지. 이제 앞뒤가 전부 들어맞았다.
서로 좋아하는 거라면, 그냥 오소마츠 형이 솔직하게 쵸로마츠 형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그러면 결국 쵸로마츠 형의 균형을 맞춰줄 수 없는 꼴이 되어 버리니까 오소마츠 형은 그럴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소마츠 형은 자신의 마음을 죽인 것이다. 사랑하는 동생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가 망가지는 걸 막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사용해서.
그 수단이 관계를 맺는 것이란 건 쵸로마츠 형의 상반되는 두 마음을 어느 정도 한 번에 이뤄주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거라면 아까 내가 말했던 것처럼 다른 방법도 있었을 테니,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에게 가진 마음도 어느 정도 이뤄주기 위함도 있었겠지. 정말로 이건 두 사람에게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 그렇지만 오소마츠 형. 쵸로마츠 형이 망가지는 건 막을 수 있을 테고 어느 정도 서로의 바람도 이뤄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는 해도.’
맞은편에 앉은 오소마츠 형은 잔에 든 술을 쭉 들이켰다. 형은 어느새 아무렇지 않다는 것처럼 웃고 있었다. 늘 저런 식이야. 형제 제일의 쓰레기인 주제에, 결국 다 동갑이라 장남이나 막내 같은 건 별 상관없는데도, 꼭 이런 때는 장남이랍시고 우리들을 우선시하지.
‘그런 방법으로는 두 사람의 마음이 너무 아프잖아…….’
결국 나도 술을 한입에 털어버렸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이제야 나는 오소마츠 형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갈 수 있었고, 그 끝에서 술에 취해 잠든 쵸로마츠 형을, 드디어 발견할 수 있었다.
오소마츠 형이 택한 방법은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그건 오소마츠 형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는 방법이었다. 쵸로마츠 형의 부정을 바로 옆에서 들어야 하는 입장이니까. 게다가 쵸로마츠 형의 마음의 균형도 물론 맞춰지기야 하겠지만,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혼란스러움이 있겠지. 둘의 마음에 그간 얼마나 많은 상처가 났을까, 그건 감히 상상조차 못 하겠지. 헛웃음이 나왔다.
형들은 둘 다 정말 바보야. 웃기지도 않네. 도와주고 싶어도 그렇게 나와 버리면 어떻게 할 수도 없잖아. 그러니까 카라마츠 형이 선글라스를 던져버린 거겠지. 새로 썼던 선글라스 아래에서는 분명 지금의 나처럼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거야.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
드라이몬스터라 불리는 평소의 나답지 못한 말은 내 마음속에서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 일도 아닌데 내가 다 울 것 같았고 내 마음이 다 답답했다. 나는 괜히 발로 바닥을 차며 이 바보 두 사람을 누군가 제발 구원해주었으면, 하고 약간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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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우미] 반말 [럽라60분전력]
“미안해! 코토리, 오늘 갑자기 중요한 일이 생겨서 끝나고 못 놀 것 같아!”
오늘은 오랜만에 μ's의 2학년 멤버 코우사카 호노카, 소노다 우미, 미나미 코토리가 함께 시내에 들러 놀러 가자고 했던 날. 평소엔 방과 후 연습이 끝나 아홉 명이 다 같이 하교하곤 하다 보니 세 명이 함께 어딘가에 들렀다 가는 기회가 적어진 참이었다. 멤버 모두와 친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소꿉친구 셋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지, 싶은 마음에 잡은 약속이었고, 세 명은 약속일만을 기다렸던 터였다. 그런데 하필 당일 코토리에게 가족 관련으로 중요한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 정말 아쉽지만, 어쩔 수 없네요.”
“우우, 호노카는 오랜만에 세 명이서 신나게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에…….”
“정말 미안해…… 코토리가 어떻게든 해 보려고 했는데…….”
그랬는데, 그랬는데……. 코토리는 울상을 지었다. 호노카는 가게의 일 때문에, 우미는 궁도부 시간 때문에 셋의 시간을 맞추기란 꽤나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회색 소꿉친구의 생각을 주황색과 푸른색의 소꿉친구 또한 눈치 채고 있었기에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웃었다. 괜찮아, 코토리쨩! 약속은 다음으로 미루면 되는 걸! 맞아요. 시간이야 또 내면 되는 걸요. 애초에 코토리의 잘못도 아니고요. 코토리는 두 소꿉친구의 말에 여전히 미안한 표정으로 입술만을 달싹였다.
“우우, 그치만, 그래도……. ……아, 그럼 오늘 호노카쨩이랑 우미쨩 둘끼리라도 놀러가지 않을래?”
꼭 그래 줘. 코토리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코토리를 빼고 둘이서만 놀자니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섭섭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진심이 담긴 말투에 두 사람은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 * *
“우미쨩이랑 이렇게 둘이 놀러가는 건 정말 오랜만이네~”
“그러네요. 늘 셋이 함께였으니까요.”
어디로 놀러갈까? 영화라도 볼래? 카페는? 가라오케라던가…… 코토리가 빠지긴 했지만, 우미와 둘이 놀러가는 것도 오랜만이기도 하겠다 싶어 신난 호노카가 재잘재잘 떠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우미는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 스쳤다. 호노카와 함께 있으면 꽤 다이나믹한 일들 투성이었다. 처음 스쿨 아이돌을 하겠다고 했을 때 얼마나 당황했는지. 뭐 어쨌거나 저쨌거나 같이 활동하고 있는 현재이긴 하지만.
“우미쨩, 듣고 있어!?”
“네!? 아, 호노카…….”
“정말~ 호노카가 아까부터 열심히 어디에 갈 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잖아! 안 듣고 있었지?”
“으…… 죄송합니다.”
공손하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우미를 보며 호노카는 눈을 깜빡였다. 우미쨩은 언제나 이렇게 공손하다니까. 사실 호노카는 그렇게 화난 것도 아닌데. 역시 전통 있는 집에서 자라서 이렇게나 몸에 예의범절이 배어 있는 거겠지. 같은 학년인데다, 엄마 뱃속에서부터 소꿉친구였던 호노카에게도 존댓말을 쓰니까…… 응? 존댓말? 호노카는 뭔가를 깨닫고 곧 발걸음을 멈춰 짐짓 화가 난 것처럼 보이도록 제 허리에 양 손을 짚고 눈가에 힘을 주며 우미를 바라보았다.
“우미쨩, 호노카는 지금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에?! 저, 정말 죄송합니다, 호노카.”
“그런 평소와 같은 사과로는 통하지 않습니다! 호노카는 화가 났어요, 화가 났다고요!”
“그, 그럼 어떻게 해야…….”
걸려들었어. 호노카는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겨우 진정시키며 답했다.
“반말로 사과해주세요!”
“네!?”
반말로 사과하라니, 놀리는 거죠!? 우미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호노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호노카는 지금 빵 먹던 힘까지 쏟아 포커페이스를 유지 중. 어라, 호노카가 이렇게나 험악한 표정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 텐데요……. 분명히 자신을 놀릴 요량으로 한 소리라고 생각했건만, 그게 아니라 진짜 화난 건가. 우미는 호노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호노카가 화난 목소리로 재촉했다. 뭘 그렇게 봐, 우미쨩. 호노카에게 사과하지 않을 거야? 너무해.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우미는 황급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호노카가 이렇게까지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었는데. 역시 말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 제 불찰입니다. 우미는 속으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호노카를 바라보았다.
“미, 미안해, 호노카.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다신 이런 일 없도록 할게.”
비장한 표정으로 건네지는 사과의 말에 꾹꾹 참고 있던 호노카의 박장대소가 곧 터져버리고 말았다.
“푸훕!? 우미쨩, 이건 꽤 신선하네!”
“호, 호노카아!? 화난 게 아니었어요!?”
“아니아니, 우미쨩은 평소에 존댓말 하니까 말이야. 이렇게라도 들어보고 싶어서. 우미쨩의 반말.”
“정말…… 너무해요!”
한껏 볼을 부풀린 우미가 빠른 걸음으로 시내 쪽으로 향했다. 호노카는 에헤헤, 하고 웃으며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랐다. 미안해, 미안. 호노카가 만쥬 줄 테니까~ 흥, 그런 걸로 풀릴 것 같습니까! 아잉, 우미쨔~앙! 팔짱을 껴 오며 사과하는 호노카를 한 번 보고 우미는 한숨을 쉬었다. 호노카와 관련이 되어버리면 다른 때보다 더 심각해지는 자신이 정말 피곤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인연을 놓아버리면 그건 그 이상으로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 장난이긴 했지만, 나중에 정말 호노카가 그런 표정으로 자신에게 화를 낸다면……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네요. 우미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다니까요, 호노카는. 용서해 줄게요.”
“정말? 아싸! 우미쨩 정말 좋아!”
“에잇, 너무 붙지 말아 주세요!”
“아잉, 우미쨩~”
두 사람은 시내로 향하는 발걸음을 빨리 했다.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 놀지도 못했으니까. 코토리의 빈자리를 채울 만큼, 오늘은 더 신나게 놀아 볼까요―